이홍구 전 국무총리 별세: 통합의 정치가가 남긴 유산과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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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중도의 길을 걸었던 한 거인의 삶을 돌아보는 옆줄쓰는이
이홍구 전 국무총리가 향년 92세로 별세했다. 그가 떠난 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건, 그가 그토록 경계했던 세상이 이미 와버렸기 때문이다.
부고를 접하고 잠시 멈췄다. 이홍구 전 총리의 이름이 최근 뉴스에 자주 등장하지 않았다. 그는 조용한 사람이었다. 서울대 정치학 교수에서 통일원 장관, 국무총리까지 올랐지만 그의 이름 앞에는 '화려한'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지 않았다. '합리적'이라는 단어가 더 맞았다. 민주화, 탈냉전, 세계화라는 세 개의 거대한 역사적 파도를 관통하면서도 그는 이념의 극단을 피했다.
통일방안의 설계자가 왜 지금도 읽히나
이홍구 전 총리가 남긴 가장 구체적인 정책 유산은 1989년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이론적 기반이다. 당시 통일원 장관으로서 그는 군사적 흡수통일도, 연방제도 아닌 제3의 길을 설계했다. 점진적 화해와 협력을 통한 단계적 통일. '자주, 평화, 민주'라는 세 원칙 아래 남북 간 이질성을 인정하는 현실주의 통일론이었다. 이 방안은 이후 30년 이상 보수와 진보 정부 모두에서 기본 틀로 유지됐다. 이념이 강한 정책은 정권이 바뀌면 뒤집힌다. 그의 방안이 살아남은 이유는 거기에 이념보다 현실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국무총리 재임 시절(1994~1995년)의 국정 철학도 비슷한 결이었다. OECD 가입을 앞두고 세계화의 파고가 밀려오는 시기에 개방과 사회 안전망 강화를 동시에 주창했다. 노동계와 재계가 첨예하게 충돌하는 상황에서 어느 한편의 손을 일방적으로 들어주기보다 절충점을 찾으려 했다. 그게 지금 얼마나 귀한 정치 언어인지는, 지금 국회를 보면 알 수 있다.
그가 경계했던 것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것
이홍구 전 총리는 갈등이 파괴적인 방식으로 흐르는 것을 경계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갈등은 필연적이지만 그것을 생산적 방향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게 그의 일관된 신념이었다.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사회 갈등 비용은 GDP의 약 27%, 연간 수백조 원에 달한다. 통합이 이상론이 아니라 매우 실질적인 국가 경쟁력 문제라는 것을 이 숫자가 말한다.
그가 즐겨 인용했다는 비스마르크의 말이 있다.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다." 이상은 높게 유지하되, 현실의 제약 속에서 최선의 타협점을 찾는 것. 지금 한국 정치에서 이 언어를 쓰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생각해보면, 그 자리가 얼마나 비어있는지 실감하게 된다.
그는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로서 학문적 기반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현실 정치에 뛰어든 드문 사람이었다. 학자가 정치에 들어가면 대개 둘 중 하나를 잃는다. 학자의 비판적 거리감을 잃거나, 정치인의 실행력을 얻지 못하거나. 이홍구 전 총리는 그 균형을 끝까지 유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그런 사례가 많지 않다는 게 더 씁쓸한 사실이다.
🖋️ 이홍구 전 총리의 별세는 한 정치인의 죽음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어른다운 어른'의 모델이 하나 더 사라졌다는 뜻이다. 그의 유산을 이어받는 방법은 추모사를 쓰는 게 아니라 그가 평생 경계했던 방식의 정치를 조금이라도 줄이는 것이다. 평안히 영면하시길.
